이불, 시작 외
화창하고 예쁜 날, 12시에 예약해둔 전시 보러 오전 11시 출발
몇 년만에 온 서울시립미술관
40,000번의 펌프질로 완성되는 참여적 조각, 기념비 히드라
왕비, 여신, 게이샤, 무속인, 부채춤 인형, 여자 레슬러 등 여러 여성들의 이미지로 만든 작품이다
현재는 바람이 조금 빠진 상태인데,
역설적이게도 절대 영원할 수 없는, 혹은 완성된 기념비를 볼 수 없는 것으로 의도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가 아무리 많아도 몸을 이끌어다 놓는 전시는 많지 않다
그만큼 공간이 매력적이거나 나의 에너지와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함께한다
처음에 사진으로 소프트 조각을 봤을 때 기괴해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왜인지, 자꾸 생각이 났다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했더니, 그토록 좋아하던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현경 선생님이 생각났다
이불님과 현경님 두 분 다 여성이 가진 힘에서,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예쁨'이 보인다
특히 이불작가님 전시는 호불호가 아주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 보니까, 조각의 소프트함과 부드러움, 비즈와 반짝임 등이 어우러져
어떤 고통과 사회의 프레임 속에서도 '예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래는 언론에 공개된 사진들
내가 드라마 <도깨비>를 좋아했던 이유는,
김신이 한 평생 가슴에 칼을 꽂고 다니는 걸 참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칼을 뽑아 들면 비로소 생을 마감할 수 있다
사는 내내 가슴에 칼을 꽂고 사는 건, 김신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임신과 인공유산 경험이 없지만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생과 사가 한 인간을 통해 오고 간다는 것은 영혼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전라로 몸을 매달고, 낙태경험이 있는 사람, 어쩔 수 없이 도운 사람 그리고 관심이 없던 사람도
이 행위를 통해 죄책감이 덜어지길 바란다 하였다
작가가 많이 아파겠다 싶으면서도, 어쩌면 누군가의 죄책감을 덜어준다는 명목 하에
자신은 죗값을 자처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밖에 생선 내장을 꺼낸다거나
여성을 보는 시선, 여자들을 부르는 지칭들, 여자를 옭아매는 것들을 시원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초기에는 여성의 나체, 성에만 관심을 보이던 사람이 많았는데 차차 작가의 의도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소풍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다녀오길 너무 잘했다
나에게는 힘이 되고 영혼의 피가 되어, 세포가 살아나는 듯했다
아래는 서울시립미술관 2층 허스토리 전시
가슴에 전구를 단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림이 아니라 사건에 머물게 되어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여성의 눈만 봐도 통증이 느껴진다
대략 33년 전 사건인데 당사자는 이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게 궁금해서 사진으로 남긴다
2층에서 기념비 사진을 마지막으로 전시 관람이 끝났다
정말 보고 싶은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철거 중이었다
한 사람은 등 뒤로 스스로의 손바닥을 맞대고,
여러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뒤돌아 있었던 작품이다
아쉽지만 충분했다
유명한 정동길 르풀
실내에서 테라스로 자리 한 번 옮겼다
제일 좋아하는 연어와 아보카도 파니니
무엇보다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내가 은근히 커피 따지는 입맛이 까다로운데 커피 맛집이었다
너무 좋은 날씨지만 나는 과제하러 학교에:)
햇볕이 참 따사로웠다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뭇잎도 예쁘고 참새 소리도 들렸다
오랜만에 여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