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오랫동안 신체 모니터링을 하느라 뇌 공간의 90퍼센트를 희생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무엇을 했을 것 같나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녀에게 극심한 고통이었다. “자존감이 높아졌겠죠. 제 인생 자체가 달라졌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생각했을 거예요. 남자들과의 관계도 매우 달라졌을 거고요.”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충격받은 구절이다. 나 역시 그간 외모에 대해 꽤 많은 투자를 해왔다. 비용과 시간은 물론이며, 그에 힘 쏟는 에너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외모가 최상일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더 예뻐야 한다는 욕심과 이마저도 유지하지 못할까 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늘 궁금했다. 살이 더 빠지면 지금의 얼굴과는 많이 다를까 하고. 실제로 내 얼굴은 1킬로그램 차이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미묘한 알아차림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더 민감한 부분이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대신에 무엇을 했겠느냐’란 질문에 대해 깊게 생각해봤는데, 그에 대한 내 답변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는 더 많은 배움과 더 큰 성장을 원했다. 내가 외모에 신경 쓰던 시간만큼 영어나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나는 레베카에게 말했다. “이게 최선일 거라는 말이 재미있네요. 그 점에 대해서 저도 많이 생각해봤어요. 여성의 힘이 어린 시절에 정점을 찍는 이 세상에 대해서 말이에요. 당신은 아직 서른이 안됐는데 이미 내리막이라고 느끼잖아요.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이 가장 최선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내 스페인어 이름은 레베카이고 나는 아직 29살이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 편으론 위안이 되는 반면에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참 괴롭게 살았는데 대부분의 여자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삶 이 안녕할 수 있는지 의문과, 공감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의 삶이란 백조처럼 우아하되,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걸까.
또 한 가지 든 마음은 서늘함이었다. 내가 만약에 이런 배움이나 알아차림 없이 연애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면 이 모든 과정을 버텨낼 수 있었을지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가정에서 시작되었든, 사회로부터 세뇌당했든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내가 홀로 자리를 잡고 온달이 되어가는 요즘 이 책을 만난 건 아주 큰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많은 여성이 외모를 꾸미는 일부 행위를 즐기고 거기서 힘을 얻는다. 그러나 어떤 행위는 의무처럼 느낀다. 시간과 돈이 귀중하다는 것을 안다면, 자신에게 물어보자. 이 시간과 돈으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 시간을 가족과 친구, 또는 중요한 누군가와 보낼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돈을 모아 휴가를 가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다. 또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할 수도 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지키고 싶은 가치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번에도 헤어스타일을 바꾸려고 했었다. 늘 펌과 염색, 다시 자르는 것을 반복하며 나름의 품위유지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화장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래도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24살 무렵부터 민낯으로 다녔다. 사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더 예쁘다는 남자의 말에 혹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나름대로는 외모 강박과 싸우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을 읽고 마음을 접었다. 그러니까 ‘품위유지비’를 절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과거의 나는 약속 잡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다. 외식을 하면 필시 살이 찔 것 같았고 예쁘지 않은(살이 찐) 모습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수치감을 느꼈다. 그래서 대부분을 혼자 보냈고 외로워진 나는 폭식을 반복했다. 그래서 더욱 사람을 만날 수 없었고 혼자는 외로웠다.
나는 이 문장 그대로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고, 휴가 내지는 여행을 떠나고, 자선 단체에 기부를 하거나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외모 강박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을 생각해봤을 때,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이미지가 비현실적이고 비전형적이다. 이는 현실의 여성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왜곡한다. 두 번째로, 그 이미지는 성공, 연애, 행복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특정한 유형의 아름다움이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열쇠라는 개념을 강화시킨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런 이미지 속의 여성은 빈번히 성적으로 대상화되어 여성을 사물로 취급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흐름은 여성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
이 구절 역시 너무도 공감되었던 부분이다. 외모 안에는 인기와 권력, 타인들의 친절함 그리고 사랑과 결혼까지도 연관이 되어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외모가 미치는 영향력은 있겠지만 삶의 전부는 아니다. 본문 중에 ‘5킬로그램만 감량하면 연애가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부분에서 웃음이 났다. 내면 작업 없이 외모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이야 웃을 수 있지만 나에겐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었고 그게 사실인 줄 알고 살았다.
이 외에도 너무 좋은 이야기가 많았다. 책 한 권에 모두 밑줄을 그을 수 있는지 고민이 될 정도로 큰 도움이 된 내용이었다. 작가님이 그간 젠더와 여성심리학에 얼마나 많은 노고와 관심을 기울여 탄생한 작품인지 가슴으로 와 닿는다. 덕분에 한 여자의 삶이 이토록 자유로워졌다.
지금까지 반절 정도 읽으며 내가 느낀 변화는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어쩌면 근래에 살이 찐 내 모습이 회피하고 싶어서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그리고 더 이상 외모에 대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지출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건 날씬해진 몸으로 인생 샷을 남길 수 있는 여행이 아닌, 자연과 오감을 느끼며 깨어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속 예쁜 여자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르네 마그리트 그림 중에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작품이 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써져있다. 셀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사료된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미디어와 광고에 끌려다니기엔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우리의 생각이 거울 앞에 붙잡혀 있으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진심으로 지지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아닌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들을 위해 정신적 여유를 다시 확보해야 한다.
자, 친구여. 시작해보자.
너는 네 몸이 잘못됐고 결점투성이라고 떠들어대는 이미지와 미디어의 목소리를 들을 거야. 하지만 내 말을 들어주렴.
네 몸은 경이롭단다. 네 몸에서 너는 불완전성을 찾겠지만 나는 힘을 찾아. 나는 태초에 만들어진 의도 그대로 움직이는 근육을 봐. 울룩불룩하다고 해서, 아니면 매끈하다고 해서 그 가치가 달라지지 않지.
그리고 웃느라 들썩이는 배와 토닥이는 팔을 봐. 기댈 수 있는 부드러운 어깨와 음악을 만들어내는 우아한 손가락을, 이해심 가득한 두 눈과 공간을 밝혀주는 미소를 봐.
햇빛의 입맞춤을 받으면서도 타버리지 않는 살결을 봐. 태양 아래서 갖가지 색깔로 빛나지. 몸의 곡선은 흉한 게 아니라 놀랍도록 아름답고 유용해. 네 영혼이 담긴 이 그릇을 응징해선 안 돼. 잘 보살펴야 하는 거야.
2018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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